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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끌 것 인가, 내버려 둘 것인가? 편집국 2021-10-15 15:01:28

강원글로벌미래교육연구원 민성숙 원장

 누구에게 어떻게 배우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 그래서 내 아이가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가 참으로 중요하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다들 보아서 알겠지만, 그 영화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성실하게 일일이 꼼꼼하게 가르쳐 주고 그것을 반드시 확인하는, 보통 우리가 이해하는 선생님의 교육 스타일이 아니었다. 키틴 선생님은 공간 안에서 자유를 주고 아이들을 무조건 허용해 주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자립과 독립을 주었다. 키틴 선생님이 한 일이란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지해 주고 지켜봐 주고,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주었을 뿐이다. 한마디로 아이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키틴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길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 간에 너의 길을 가거라.” 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충고인가. 오로지 인 서울이라는 목표 아래 어릴 때부터 장장 10년이 넘도록 대학입시에 함몰되어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다. “너의 길을 가라.” 

 내 가족 이야기를 해야겠다. 아들이 후평중학교 3학년 때 심각해졌다. 고등학교에 가기 싫다는 것이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헤어스타일에, 늦은 밤까지 교실에 앉아 있을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당시에 우리 부부는 그 말에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본 아들은 걸어 다니는 도덕 교과서라고 불릴 만큼 착한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아들의 미래를 놓고 고민한 결과 아이를 믿어 주기로 했다. 이후의 이야기는 너무나 개인적이 이야기이기 때문에 하지 않겠다. 다만 지금 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있고, 꿈과 가치를 품고 열심히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반면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 ‘코치 카터’는 아이들의 성적에 참견하고 생활 태도에도 엄격한 기준으로 훈육한 전형적인 지도와 지시, 관리로 4년간 최하위팀에 머물던 문제아 농구팀을 1년 만에 전승을 거두게 한 카터 코치의 이야기다. 3명 중 1명이 교도소에 가는 할렘가에 살고 있던 학생과 어른들을 향하여 카터 코치는 ‘어떻게 살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법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농구 코치가 선수들에게 요구한 것은 세 가지였다. 이 세 가지를 어기면 농구부에서 퇴출이라는 계약서까지 쓰게 했다. 첫째는 학점을 2.3 이상 받을 것, 둘째는 모든 수업에 참여할 것, 셋째는 수업시간에 맨 앞자리에 앉을 것. 어마무시한 저항과 반대가 있었지만, 카터 코치는 이 선수들이 나중에 프로 농구 선수가 되어도 기본적인 계약조건도 지키지 못하는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그는 사람을 만들고 싶어 했다. 

 교육의 주체는 당연히 학생이고 그 학생을 이끌어 주는 사람은 교사다. 따라서 교사의 교육철학과 태도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스타일에서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일까. 과연 양자택일의 문제일까.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허용과 자유, 내버려 둠의 확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코치 카터’에서는 질서와 가치, 이끌어 줌의 성장이 아닐까. 그렇다면 문제의 해결을 위한 그들의 선택은 옳았다. 결국 그 사람에게 맞게 교육하는 것이 답이라는 이야기다. 누가 옳은가를 따지기 전에 지금 무엇이 옳은가를 찾자는 것이다. 

※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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